[백광엽 칼럼] 한 줌 PF 카르텔의 '손실 사회화'

입력 2024-01-11 17:52   수정 2024-01-12 00:14

태영건설 유동성 위기에 나라가 떠들썩하다. ‘F4’(기획재정부 장관, 금융위원장, 한국은행 총재, 금융감독원장)가 연일 머리를 맞대는 것도 모자라 대통령까지 개입했다. 기껏 16위 건설사의 존망에 이리 호들갑인 이유는 ‘경제 뇌관’ 프로젝트파이낸싱(PF) 위기의 향방을 가름할 시금석이어서다.

돌아보면 PF의 한국 경제 공습은 가혹하고도 반복적이다. 마치 영화 속 ‘불사(不死)의 빌런’처럼. 일단 외환위기 이후 터진 위기·사고 대부분이 PF발(發)이다. 2011년 저축은행 사태가 잘 보여준다. 31개 저축은행을 파산시키고 공적자금 27조2000억원을 삼킨 원흉이 바로 PF 부실이다.

2003년 출범한 노무현 정부의 ‘돈풀기’로 부동산이 달아오르자 당시 저축은행들은 부나방처럼 PF로 달려들었다. 업계 여신의 4분의 1가량을 몰빵했다. 부동산 거품을 타고 초기에는 돈벼락이 내렸다. 하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만나 일순 지옥으로 추락한 게 저축은행 사태다.

5개월 전 BNK경남은행에서 터진 역대 최대 횡령도 PF 사고다. 한 간부가 17개 PF사업장에서 7년에 걸쳐 2988억원을 빼돌렸다. 경남은행은 2010년에도 법인·행장 인감을 위조한 수천억원대의 어이없는 PF 보증사고를 겪었다. 이쯤 되면 불치병 수준이다.

2022년 가을 ‘레고랜드 사태’ 역시 강원도의 무리한 PF 금융이 발단이었다. 금리 인상에 따른 부동산시장 급랭에 PF 대출·차환 길이 막히자 지방정부임에도 손절을 단행했고 이는 건설·금융시장을 패닉으로 몰았다.

PF는 장점이 넘치는 필수불가결의 선진금융이다. 하지만 작금의 태영 워크아웃 사태는 PF가 한국 경제의 ‘악의 축’으로 퇴락했음을 웅변한다. 134조원까지 부풀어 오른 PF 대출 중 70조원 넘게 부실화할 수 있다는 게 건설산업연구원 분석이다. 이럴 경우 건설사 도미노 부도를 넘어 ‘한국판 서브프라임 위기’로 비화할 개연성도 적잖다. 만에 하나 PF 부실을 감당하지 못하는 금융사에서 뱅크런이 시작된다면 ‘시스템 위기’로 직결된다.

다행히 현재까지는 조짐이 없다. 85조원 규모의 막대한 시장안정기금을 마련하고 발 빠르게 대처한 덕분이다. 이 과정에서 최상목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유사시 중앙은행 직접 자금 지원’ 카드까지 꺼냈다. 이런 전개는 안도와 분노의 감정을 교차시킨다. 시장안정기금 85조원은 민간·공공 금융기관을 탈탈 털어 조성했다. 여유자금이 PF 뒤치다꺼리에 총동원되는 데 따른 기회비용은 상상초월일 것이다.

PF업계의 한탕주의와 모럴해저드를 떠올리면 더욱 씁쓸하다. 2019∼2022년 9개 증권사가 PF 임직원에게 지급한 성과급만 8510억원이다. 2022년 연봉상위 10명 중 8명이 PF부문에서 나왔다. 기여만큼의 인센티브는 장려할 일이다. 하지만 과실만 따 먹고 실패 시 손실 부담은 시장에 전가하는 불공정이 판친다. “1~2년 단기 성과 때 큰돈을 챙기고, 뒷날 부작용은 책임을 안 지는 구조”(이복현 금감원장)다. 엊그제는 개인회사를 차려 무려 500억원을 편취한 증권맨이 적발됐다. 한 줌 ‘PF 카르텔’에 의한 ‘이익 사유화, 손실 사회화’ 논란이 불가피하다.

한국 PF 금융은 ‘사업성 심사’라는 정통 코스를 외면한 채 책임준공 확약 등 건설사 신용 보강에 기댄 ‘담보대출’ 성격으로 변질돼 리스크가 급증했다. 시행사 자본 요건 강화, 분양대금 의존도 완화 등 부동산 제도·금융 재설계가 시급하다. 또 땜질 처방에 그친다면 집요하게 약한 고리를 파고드는 빌런을 끝없이 마주해야 한다.

과잉 유동성이 ‘부실 PF 숙주’라는 교훈도 소중하다. 저축은행 사태는 노무현 정부, 태영건설 사태는 문재인 정부의 닮은꼴 ‘돈풀기 정책’이 원죄다. 삼세번 실수가 나온다면 파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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